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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18 《위키드》 후기|녹색의 마녀가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오즈가 숨긴 진실 (2024)

by 0_long 2025. 4. 19.

 

<위키드(Wicked)>

  • 감독: 존 M. 추
  • 출연: 신시아 에리보(엘파바), 아리아나 그란데(글린다), 조나단 베일리, 미셸 여, 제프 골드블럼
  • 장르: 판타지, 뮤지컬, 드라마
  • 상영시간: 160분
  • 개봉일: 2024년 11월 20일
  • 평점: 8.66

 


줄거리

《위키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이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지닌, 오즈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소녀다. 타고난 마법 능력과 뛰어난 지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항상 주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엘파바는 동생 네사로즈를 돌보며 부모의 냉대를 감내하고, 우연한 기회로 시즈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는 학교의 스타이자 빛나는 인기를 자랑하는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룸메이트가 된다. 처음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 탓에 충돌을 겪지만,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알아보고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엘파바는 뛰어난 마법 실력을 인정받아 마법사의 초청을 받는다. 오즈의 마법사는 겉보기엔 온화하지만, 실상은 동물들의 지성과 언어 능력을 박탈하고 그들을 억압하며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인물이다. 이 진실을 알게 된 엘파바는 정의감에 의해 마법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로 인해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언론은 엘파바를 ‘서쪽의 사악한 마녀’로 몰아가고, 대중은 마법사의 조작에 속아 엘파바를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반면 글린다는 사회적으로 수용되며 '북쪽의 착한 마녀'로 추앙받는다. 둘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고,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신념과 현실의 벽은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엘파바는 결국 오즈 전역에서 추방당하고, 마법사는 그녀를 끝내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엘파바는 자신이 믿는 정의와 사랑을 지키려 하며, 글린다와의 우정 또한 잊지 않는다. 영화는 마법의 뒤편에서 ‘진짜 마녀’가 누구인지 되묻고, 결국 그 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감상 후기

《위키드》는 겉으로는 환상적인 세계관과 화려한 마법이 가득한 뮤지컬 판타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가 견고하게 깔려 있다. 특히 '악마화'라는 주제는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얼마나 자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악'으로 단정 지어왔는지—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습관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신시아 에리보는 엘파바 그 자체였다. 그녀는 강하지만 연약했고, 외로우면서도 품위 있었다. 특히 엘파바가 진실을 알게 된 후, 마법사의 세상을 거부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엔 분노와 슬픔, 결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Defying Gravity’ 장면에서는 그 감정이 폭발하듯 터진다. 단지 고음의 노래가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을 향해 “나는 나로서 존재하겠다”고 외치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글린다 역할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풀어냈다. 첫 등장부터 ‘Popular’를 부르며 사랑스러운 허영심을 보여주지만, 시간이 지나며 엘파바와의 우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글린다의 모습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상대역’이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 뚜렷한 성장을 보여준다.

조연들의 연기도 눈부셨다. 미셸 여가 연기한 마담 모리블은 권력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존재였고, 제프 골드블럼의 마법사는 ‘친절한 독재자’의 위선을 보여주는 데 탁월했다. 이 캐릭터들이 있기에 엘파바와 글린다가 대립하는 세계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위키드》가 대단한 이유는 그 모든 이야기를 뮤지컬로 풀어내며도 서사의 힘을 전혀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 넘버는 캐릭터의 심리와 서사의 전환점을 정교하게 연결하고, 시각적인 연출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아름답게 가로지른다. 160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총평

《위키드》는 단지 ‘오즈의 마법사 프리퀄’이라는 설명으로는 담기지 않는 깊이를 가진 영화다. 이 작품은 진짜 악은 어디에 있으며, 누가 진실을 조작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엘파바는 소수자의 상징이다. 피부색, 말투, 철학—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주류와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강단은, 단지 한 명의 마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다. “너는 틀리지 않았다. 세상이 네게 틀렸다고 말했을 뿐이다.”

글린다는 대중이 원하는 ‘좋은 사람’이다. 예쁘고 밝고 착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존재. 하지만 영화는 글린다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녀 역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그 점에서 글린다는 굉장히 인간적인 인물이고, 관객에게 “나는 누구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위키드》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두 여성 캐릭터의 관계다. 라이벌, 친구, 동지, 그리고 때로는 적. 이 복잡한 관계는 단순히 '선 vs 악'의 대결 구도를 넘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옳음을 추구하는 두 개의 정의를 보여준다. 이 구조가 영화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비주얼, 음악, 연기, 스토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원작 팬도,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스케일과 감정선.

 

결국 《위키드》는 묻는다.
“진짜 ‘마녀’는 누구였는가?”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 어떤 주문보다 강력한 감정이 오래도록 남는다.

 


추천대상:

  • 《오즈의 마법사》를 사랑했던 사람
  • 사회적 약자와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 관객
  • 여성 중심 서사와 관계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
  •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품은 뮤지컬 영화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