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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13 미키17 후기|복제 인간, 자아의 경계 그리고 봉준호식 블랙 SF (2025) - 줄거리, 리뷰, 쿠키 정보 등

by 0_long 2025. 4. 17.

<미키 17 (Mickey 17)>

  • 개봉일(한국 기준) : 2025년 2월 28일
  • 감독 : 봉준호
  • 원작 : 에드워드 애슈턴 『Mickey7』
  • 출연 :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 상영시간 : 137분
  • 장르 : SF, 드라마, 블랙 코미디

 

영화 정보

<미키 17>은 <기생충>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SF 장르 도전작이다. 영화는 복제 인간, 존재론적 정체성, 자본주의적 소외라는 무거운 주제를 블랙 코미디와 실존적 고뇌의 문법으로 녹여낸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Mickey7』을 원작으로 하되, 봉준호 감독은 기존 텍스트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했다. 여기엔 익숙한 사회 비판적 시선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배우 로버트 패틴슨은 1인 2역—‘미키 17’과 ‘미키 18’을 연기하며, 실존적 혼란 속 정체성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포인트

  • ‘익스펜더블’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소모품 인간이다.
  • 미키17의 사유화된 노동과 반복되는 출력은
    자본주의 속 인간 소외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 얼음행성 니플하임은 단지 배경이 아닌,
    인간이 생존과 자원만을 탐욕스럽게 좇는 현실의 은유다.
  • “두 미키”가 마주하는 혼란은 단순히 물리적 공존이 아닌
    ‘자아의 중복’이라는 윤리적 난제까지 던진다.

 


줄거리 (시놉시스)

극한 노동, 위험한 탐사,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임무. ‘미키 반즈’는 지구를 떠나 얼어붙은 행성 ‘니플하임’ 개척 프로젝트에 ‘익스펜더블’이라는 소모품 인간으로 참여한다. 익스펜더블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며 죽을 경우, 기억을 이식한 새 복제체가 출력된다. 현재 살아 있는 미키는 17번째 복제체—‘미키 17’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키 17은 크리퍼(토착 생명체)를 조사하던 중 실종된다.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 그는 즉시 ‘미키 18’로 교체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미키 17이 살아 돌아오고, 프로토콜에 따라 “하나만 존재해야 할 익스펜더블”이 두 명이 된 상황이 벌어진다. 이들은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은밀히 공존하기로 한다. 하지만 식민지 지도자 마샬과 그 아내 일파는 복제 윤리와 자원의 논리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제거’하려 한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으로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고뇌하며 반격을 시작한다.

 

한편, 미키들은 토착 생명체 크리퍼들과의 접촉을 통해 인간의 ‘개척’이라는 명분이 결국 폭력과 침략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진짜 평화는 생존 경쟁이 아닌, 공존을 통해 이루어짐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키 18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미키 17에게 진짜 삶을 돌려준다.

 


결말 및 감상 후기

<미키 17>은 단순한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복제 인간이라는 틀을 빌려 자아의 정체성과 인간다움, 시스템 안의 윤리를 질문한다. 미키 17과 미키 18이 나누는 대화는 철학적이다. 그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존재로 갈라져 있고, 그 ‘작은 차이’가 결국 한 사람의 진짜 삶을 좌우하게 된다. 그들의 공존은 곧 타협의 결과이자, 동시에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위해 선택한 ‘희생’의 결말이다.

 

결국 미키 18은 자신이 새로운 미키가 아닌, “남은 사람을 위해 살아남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반복되는 존재”가 아닌,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인간의 가치다. 죽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설정은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과 무가치를 더 강조한다.

 

삶은 소모될 수 없으며,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철학이 봉준호 특유의 쓴맛 나는 유머 속에 녹아 있다.

 

연기적으로는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이 탁월하다. 같은 인물이면서도 미세한 시선, 대사 톤, 행동 리듬이 달라 관객은 두 미키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혼잣말 장면에서의 미세한 혼란과 후회는 그의 커리어에서 손꼽히는 연기로 기억될 만하다.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의 조연 연기 역시 폭력적 시스템의 기만성과 권력의 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총평

<미키 17>은 익숙한 할리우드식 SF 구조를 택하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메시지는 매우 봉준호적이다.

  • 복제된 인간은 과연 동일한 존재인가?
  • 한 사람의 정체성은 ‘기억’에 있는가, ‘행위’에 있는가?
  • 시스템은 개인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들을 유머와 블랙함,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니플하임 풍경 속에 녹여낸다. 복잡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이 작품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시스템과 타협하지 않는 ‘한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걸 말해준다. 과학기술과 인간 윤리, SF와 실존의 경계에 선 가장 섬세하고 철학적인 블록버스터.
봉준호의 다음 챕터가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