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 제목: 《승부》 (The Match)
- 감독: 김형주
- 각본: 김형주, 윤종빈
- 출연: 이병헌(조훈현), 유아인(이창호), 고창석, 문정희, 김강훈 외
- 제작사: 영화사 월광, BH엔터테인먼트
-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
- 장르: 드라마
- 상영시간: 115분
- 개봉일: 2025년 3월 26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소개
《승부》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 바둑계를 뒤흔든 실존 인물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를 중심으로, 스승과 제자가 마주한 감정의 전선, 그리고 경쟁과 존경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긴장을 숨 막히는 심리전으로 풀어낸 정제된 드라마다. 1980~1990년대 한국 바둑계를 배경으로 하며, ‘국민 기사’ 조훈현과 바둑 천재 이창호의 만남, 성장, 그리고 대결까지의 과정을 실화에서 모티브 삼아 극적으로 각색했다.
줄거리
조훈현은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바둑계를 평정한 절대 고수였다. 그는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고, 누구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바둑 도장에서 말도 없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소년 이창호를 마주하게 된다. 소년은 바둑판 앞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했고, 그 수는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조훈현은 자신이 평생을 걸쳐 쌓아온 실력을 전수할 그릇을 이창호에게서 발견하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둘은 함께 살며 바둑을 두고, 훈련하고, 먹고 자는 시간마저도 공유하며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창호는 스승의 바둑을 모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침착한 수 싸움, 리스크를 줄인 계산 위주의 전략을 구사했고, 조훈현과는 전혀 다른 기풍을 스스로 구축해갔다. 시간이 흐르고, 이창호는 어느덧 기사계의 중심에 선다. 국제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심지어 조훈현의 기록을 하나씩 따라잡아가기 시작한다. 스승 조훈현은 겉으로는 응원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진다. 예전에는 함께 복기하던 대국도 이제는 혼자 복기하고, 예전에는 스승의 손끝 하나에 집중하던 제자도 이제는 스스로의 결정을 따르며 독립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공식 대국의 무대에서 마주선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수백 명의 관객이 숨을 죽인 가운데 스승과 제자가 바둑판 앞에서 수를 두기 시작한다. 그 바둑판 위엔 단지 검은 돌과 흰 돌만 있는 게 아니다. 수십 년 간의 관계, 눈빛, 무너진 자존심과 아직 남은 존경, 그리고 침묵으로 쌓여온 감정들이 서로 얽혀 있다. 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지고, 조훈현은 어느 순간, 이창호의 수가 ‘자신의 것을 넘었다’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그 수를 막지 못한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대국이 끝난 뒤, 이창호는 조용히 스승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조훈현은 묵묵히 자리를 뜬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지 않고 등을 돌리지만, 그건 작별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나누는 마지막 인정의 몸짓이었다.
감상 후기
《승부》가 탁월한 점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캐릭터와 연출의 힘이다. 조훈현은 ‘승부’와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다. 이병헌은 이 복잡한 내면을 아주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낸다. 초반의 자신감, 중반의 흔들림, 그리고 마지막의 체념과 인정까지—
그의 연기선은 매우 조용하지만, 모든 감정이 얼굴에 서려 있다. 유아인은 이창호라는 인물을 단지 ‘천재 소년’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그는 애초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를 말 없는 눈빛과 호흡으로 표현해낸다. 중반 이후, 그가 조훈현을 바라보는 시선은 존경에서 독립, 그리고 자신만의 승부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두 사람이 대국을 벌이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대사가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관객을 더 깊게 끌어당긴다. 바둑알 소리, 손끝의 미묘한 떨림, 돌을 두는 속도—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음악은 과장되지 않다. 현악기 중심의 단조로운 테마가 반복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후반부의 여운을 극대화한다.
이 영화가 다루는 건 결국
“스스로 만든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과
“스승을 넘어서야만 하는 제자” 사이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총평
《승부》는 스포츠 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관계’와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스승은 자신이 만든 제자가 자신을 넘는 순간, 기쁨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제자는 자신이 가장 존경한 사람을 이겨야만 진짜 자신이 되는 아이러니 앞에 선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게 될 때, 그들 사이에 남는 건 이겼다/졌다가 아니라,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인사일 뿐이다.
감정은 조용하지만, 끝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영화.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는 단순히 훌륭한 것을 넘어,
‘긴 시간 호흡을 맞춘 인물의 역사’를 연기 그 자체로 증명해낸다.
📌 이런 관객에게 추천
- 감정선 중심의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
- 스승과 제자 서사에 끌리는 사람
- 승패보다 관계에 주목하는 영화 팬
- 이병헌·유아인의 진짜 연기 대결이 궁금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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