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The Substance)>
- 감독: 코랄리 파르쟈
- 출연: 데미 무어(엘리자베스), 마가렛 퀄리(수), 데니스 퀘이드(하비)
- 장르: 스릴러 / 바디 호러 / 사회 풍자
- 상영시간: 141분
- 개봉일: 2024년 12월 11일
- 평점: 8.48
줄거리
엘리자베스는 한때 잘나가던 에어로빅 스타였다. 텔레비전 쇼의 얼굴이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던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 하지만 그녀가 50세가 되던 날, 쇼의 제작자 하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내친다. “너는 이제 늙었어. 시청자는 새로운 얼굴을 원해.” 그 말은 곧 "쓸모없는 존재"라는 선고와도 같았다. 충격과 굴욕,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밤.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를 통해 비밀스러운 실험 프로그램 ‘서브스턴스’를 소개받는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주사로, 당신의 젊고 완벽한 복제 자아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대신 한 가지 규칙. 하루에 각기 절반의 시간을 분할 사용해야 한다. 그 시간의 균형이 무너지면, 두 존재 모두 파괴된다. 엘리자베스는 결심한다.
그리곤 그녀의 ‘서브’인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한다. 젊고 매혹적이고 거침없는 ‘완벽한 나’는 곧 세상의 조명을 받는다. 미디어는 열광하고, 사랑도 따라온다. 수는 모든 것을 가져간다.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수의 뒷면이자 그림자로 전락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잠든 동안 세상은 수와 함께 호흡하고, 그녀는 점점 현실에서 사라져간다. 사라지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존재였다.
그 불안은 곧 집착으로, 집착은 파괴로 이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려 점차 규칙을 어기고, 서브스턴스는 그 균형의 붕괴에 반응한다. 그녀의 몸, 정신, 정체성은 무너지고 융합되고 분열된다. 그 결과는 더 이상 누구도 하나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이제 누가 ‘진짜’고 누가 ‘복제’인지조차 의미 없는, 완전히 파괴된 자아의 초상만이 남는다.
감상 후기
《서브스턴스》는 단지 “젊음을 되찾는 약물”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몸과 정체성, 자본주의가 만든 여성의 표준화된 아름다움에 대한 냉소적 해부도다.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데미 무어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과거 자신이 연기했던 섹스 심벌의 이미지와 현재, 늙어간다는 공포가 동시에 겹쳐 있다. ‘엘리자베스’는 단지 캐릭터가 아닌, 데미 무어 자신이기도 하다.
마가렛 퀄리는 그 반대편에서 매혹적이고 해방적인 존재로 기능하지만, 결코 ‘순수한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수’는 미디어와 사회가 조립해낸 상품화된 젊음 그 자체다. 그녀가 인기와 쾌락을 향유할수록, 엘리자베스는 존재를 잃는다. 감독 코랄리 파르쟈는 영화 전반에 걸쳐 육체적인 감각을 극대화한다. 분열되는 피부, 겹쳐지는 눈빛, 자신과의 충돌로 찢어지는 존재. 그 모든 장면은 바디 호러이자, 사회가 요구한 ‘젊고 섹시해야 하는 여성’의 파괴적 귀결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점점 더 광기 어린 리듬을 띠고, 관객은 혼란과 불쾌함 속에서
“나는 과연 내 외모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총평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늙은 여성의 젊음 회복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불가능한 완벽함에 대한 통렬한 응답이다. 이 영화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육체적이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답한다. 화려한 겉표면 이면에 도사린 자기혐오, 열등감, 잊힐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모든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
추천 대상
- 바디 호러, 정체성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
- 《블랙 스완》《언더 더 스킨》《퍼펙트 블루》 같은 심리+육체 서사 좋아하는 사람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팬
- 사회비판적 영화에 열광하는 시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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